6.25 날을 되새기며 사진을
올려봅니다..

1945년 9월9일 미군이 서울에 입성하고 있다.

1945년 9월9일 미군들이 서울시민들의 환영을 받고있다.

1945년 10월12일 부산항부두에서 일본군인들이 본국으로 떠나기전 미군에게 철저히 검색하고 있다.

1946년 1월16일 미소 공동위둰회에서 소견측대표가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1947년 5월25일 개성인근 38선 미군초소

1948년 5월8일 총선거를 앞두고 경찰이 선거방해를 염러하여 죽창을 거뒤들이고 있다.

1948년 5월10일 처음으로 실시한 총선거 유권지들이 투표하고 있다.

1948년 5월10일 선거방해사범으로 체포된 5인. 이중에서 왼쪽 첫번째여자는 "장택상"을 음해 하였다.

1948년 5월31일 국회개원식날 국회의사당 앞에서 서북청년단들이 소련철수를 주장하는 대모를 하고있다.

1950년 11월13일 함흥 석산광산. 482명을 생매장한 갱도에서 시신을 꺼내 늘어 놓은 것을 한아버지가 아들을 찾고 있다.

1950년 10월22일 평양. 북한 주민의 학살 현장.

1950년 11월13일 남편의 생매장된 갱도 어귀에서 오열를 하는 지어미

1950년8 월12일 북한포로

1950년 7월29일 경북영덕. 논두렁에 머리를 처박고 죽은북한병사

1950년 7월 29일 야간전투후 주간에는 취침.

1951년 5월28일 38선 부근 6마일 남쪽마을에 서 탱크의 포화소리에 귀를막는 소년들.이들의 누더기 바지차림이 그무렵 소년들의 대표적인 옷차림이다.

1950년 12월29일 양평 전투에서 생포한 포로들

1951년 8월18일 북한군 소년포로를 미군 통역관이 심문하고 있다

1951년 8월18일 포로들이 수용소 안에서 밥을 먹고 있다.

1951년 8월15일 창녕 남지철교..국군의 최후방어선으로 핏빛으로 강물이 물들었다.

1951년 9월19일 인천상륙선에 타고 상륙하고 있는 사진

1951년 9월15일 인천 상륙작전을 함상에서 진두지휘하는 맥아더 장군.

1951년 9월15일 인천부두로 상륙하는 맥아더 장군

1951년 9월16일 인천시가지에서 생포한 북한군들

1951년 9월 16일 인천 시가지에서 생포한 북한군
출처 :
http://blog.naver.com/yjs0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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